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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숨은 이야기

"저 성당 보기 싫어!" 로마 광장 조각상에 숨겨진 베르니니와 보로미니의 스캔들

by 아트언락커 2025.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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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아는 척' 포인트: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도시 로마의 얼굴은, 사실 한 교황의 총애를 받던 '인싸' 천재와 그늘에 가려진 '아싸' 천재의 지독한 불화와 경쟁의 산물입니다. 17세기 바로크 로마를 무대로 펼쳐진, 당대 최고의 조각가 베르니니와 가장 혁신적인 건축가 보로미니의 자존심 대결. 그 스캔들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Di Ferras - Opera propria, CC BY-SA 2.5,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963585

 베르니니의 피 델라 콰트로 피우미 분수와 보로미니의 산타녜세 인 아고네 성당이 마주 보고 있는 로마 피아차 나보나 광장

로마 피아차 나보나 전경. 베르니니의 '4대 강의 분수'와 그 뒤 보로미니가 완성한 '산타녜세 인 아고네' 성당 파사드가 한 공간에 있습니다.

 

혹시 로마 피아차 나보나 광장에 가보셨나요? 아니면 사진이라도 보신 적 있으신가요? 광장 중앙에는 웅장한 분수가, 그 맞은편에는 아름다운 성당이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수의 조각상이 꽤 재밌습니다. 어떤 조각상은 성당 쪽을 바라보며 기겁한 듯 손을 내젓고 있고, 어떤 조각상은 아예 '보기 싫다'는 듯 얼굴을 가리고 있죠. 사람들은 말합니다. "천재 베르니니가 라이벌 보로미니의 성당이 무너질까 봐, 혹은 끔찍해서 외면하는 모습을 조각한 것"이라고요.

과연 이 소문은 사실일까요? 오늘 <그림 읽어주는 서재>에서는 바로크 시대 로마를 양분했던 두 천재,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의 지독한 라이벌 스토리를 파헤쳐 봅니다.

🤝 시작은 동료, 끝은 적수

빛과 그림자처럼,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정반대였습니다.

**베르니니**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로마에 갈 수 없다면 베르니니를 파리로 데려오라"고 했을 정도로 17세기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는 교황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교황의 예술가'였죠. 조각, 건축, 그림, 심지어 무대 연출까지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엔터테이너이자 사교계의 황태자였습니다.

반면 **보로미니**는 스위스 태생의 석공 출신으로, 오직 '건축' 한 길만 판 외골수 천재였습니다. 그는 복잡한 기하학을 바탕으로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공간을 창조했지만, 성격은 우울하고 타협을 몰랐습니다.

처음 두 사람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거대한 '발다키노' 제작과 바르베리니 궁전 건축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했습니다. 하지만 총감독은 늘 베르니니였고, 보로미니는 그의 그늘에 가려진 조수(혹은 실무자)에 불과했죠. 보로미니는 베르니니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며 분노했습니다. 이들의 갈등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 첫 번째 균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스캔들

승승장구하던 베르니니에게도 치명적인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가 야심 차게 추진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남쪽 종탑 건설 프로젝트였습니다.

베르니니는 거대한 종탑을 올렸지만, 기초가 약한 지반에 무리하게 올린 탑은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전체가 이 스캔들로 떠들썩했죠.

By Alvesgaspar - 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3509289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의 웅장한 파사드와 광장 - 성 베드로 대성당. 베르니니는 이곳의 종탑 건설 실패로 명성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 잠깐! 보로미니의 반격
이때다 싶었던 보로미니가 가만히 있었을까요? 그는 종탑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며 베르니니를 맹렬하게 비판했습니다. 결국 베르니니의 종탑은 철거 명령을 받았고, 그는 건축가로서의 명성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습니다. 교황 우르바노 8세가 사망하고 새로운 교황 인노첸시오 10세가 즉위하자, 베르니니는 순식간에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차지한 것은, 바로 보로미니였습니다.

⛲️ 로마 한복판에 새겨진 조롱? 피아차 나보나

새로운 교황은 야심 찬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피아차 나보나 광장 재정비를 계획합니다. 광장 중앙의 분수대 디자인 공모가 열렸죠.

실각한 베르니니는 공모에 초대받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후원자를 통해 교황의 식사 동선에 몰래 자신의 분수 디자인 은세공 모델을 놓아두는 '꼼수'를 썼죠. 이를 본 교황은 디자인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베르니니의 작품을 쓰지 않으려는 자는, 그 작품을 보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그에게 분수 제작을 맡깁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4대강의 분수(Fontana dei Quattro Fiumi)'입니다.

공교롭게도, 교황은 분수대 바로 맞은편의 '산타녜세 인 아고네(Sant'Agnese in Agone)' 성당 재건축을 보로미니에게 맡겼습니다. 운명의 장난처럼, 두 라이벌의 걸작이 로마의 심장부에서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 알아두세요! '피아차 나보나' 전설의 진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그 '전설'의 진실을 파헤쳐 볼 시간입니다.

👉 전설: 베르니니가 보로미니의 성당이 보기 싫어 조각상(리오 데 라 플라타 강)이 얼굴을 가리게 만들었다.
👉 진실: 베르니니의 분수는 1651년에 완성되었습니다. 반면 보로미니가 성당 파사드(외벽) 공사를 맡은 것은 그보다 늦은 1653년입니다. 즉, 베르니니는 분수를 만들 때 그 자리에 성당이 완공될 줄은 알았지만, 보로미니의 디자인을 '보고' 조롱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전설이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이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로마 시민들이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를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는지 보여주는 증거 아닐까요? (이것이 바로 '아는 척'의 묘미죠!)

🏛️ 건축으로 답하다: 극과 극의 걸작들

두 사람의 경쟁은 로마 시내 두 개의 작은 성당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공교롭게도 두 성당은 걸어서 몇 분 거리에 있죠.

Di Architas - Opera propria,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0025859

보로미니의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의 물결치는 파사드 - 보로미니의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바로크 건축의 혁신을 보여줍니다.

먼저 **보로미니의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San Carlo alle Quattro Fontane)'**입니다. 좁고 답답한 사거리 모퉁이라는 최악의 입지 조건에도 불구, 보로미니는 직선을 거부하고 물결치는 듯한 곡선과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로 내부 공간을 창조해 냈습니다. 이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혁신 그 자체였습니다.

By Anthony M. from Rome, Italy - Flickr, CC BY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161626

베르니니의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 성당의 화려한 내부 돔 - 베르니니의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 조각과 건축이 어우러진 극적인 공간.

 

이에 질세라, **베르니니는 바로 옆 언덕에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Sant'Andrea al Quirinale)'**를 짓습니다. 그는 보로미니의 복잡함 대신, 단순한 타원형 평면 위에 화려한 대리석과 조각, 금빛 장식을 쏟아부어 마치 한 편의 연극 무대처럼 극적이고 감동적인 공간을 연출했습니다.

보로미니가 차가운 수학으로 천상에 도달하려 했다면, 베르니니는 뜨거운 감성으로 천상을 지상에 구현하려 한 셈이죠.

🎨 이 걸작들,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

두 천재의 경쟁은 미술관이 아닌 로마 도시 전체에 박제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고 싶다면, 로마 여행 코스에 꼭 '바로크 루트'를 추가해 보세요.

  • 장소: 이탈리아 로마 (Rome, Italy)
  • A. 피아차 나보나 (Piazza Navona):
    • 작품: 베르니니의 <4대 강의 분수>, 보로미니의 <산타녜세 인 아고네 성당>
    • 관람 팁: 광장은 24시간 개방되어 있습니다. 낮의 활기찬 모습과 조명이 켜진 밤의 낭만적인 모습을 모두 즐겨보세요. 전설의 진실을 되새기며 두 걸작을 비교해 보는 것이 감상 포인트!
  • B. 퀴리날레 언덕 근처 (Near Quirinale Hill):
    • 작품: 보로미니의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베르니니의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
    • 관람 팁: 두 성당은 도보 5분 거리에 있습니다. '산 카를로'의 혁신적인 공간감과 '산탄드레아'의 극적인 화려함을 연달아 비교하며 감상해 보세요. 두 천재의 스타일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코스입니다.

📚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더 아는 척! (FAQ)

Q1. 결국 이 라이벌 대결의 승자는 누구인가요?
👉 당대의 '인기'와 '부'로만 본다면 단연 베르니니의 압승이었습니다. 그는 81세까지 교황들의 총애를 받으며 부와 명예를 누리다 화려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반면 보로미니는 평생 베르니니의 그늘에 시달렸고, 말년에는 우울증과 고독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 하지만 '건축사'에 미친 영향력으로 본다면 보로미니의 승리라고 보는 시각도 많습니다. 그의 혁신적인 건축은 후대 건축가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으며, 현대 건축의 시작을 알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Q2. 두 사람의 스타일 차이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 **베르니니 = 종합 예술(Bel Composto).** 그는 조각, 건축, 회화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극적인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데 천재적이었습니다. 화려하고, 감성적이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 **보로미니 = 구조적 혁신.** 그는 건축 그 자체의 본질, 즉 '공간'과 '구조'에 집중했습니다. 복잡한 기하학, 빛의 극적인 사용, 물결치는 벽(곡선)을 통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건축 언어를 창조했습니다.
Q3. 베르니니는 정말 인성도 좋았나요?
👉 (웃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베르니니는 사교적이었지만 동시에 오만하고 다혈질이었습니다. 자신의 조수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해 조수를 거의 죽기 직전까지 폭행하고, 아내의 얼굴을 난도질하라고 하인에게 지시한 '막장 스캔들'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물론 교황의 비호 아래 가벼운 처벌만 받았죠.) 천재의 삶은 예술만큼이나 드라마틱했네요.

                                                                               [서재지기의 시선]

베르니니가 '가진 자'의 여유로 화려한 예술을 꽃피웠다면, 보로미니는 '가지지 못한 자'의 열등감과 처절함으로 세상에 없던 건축을 조각했습니다.

어쩌면 로마가 이토록 매혹적인 도시가 된 것은, 이 두 천재의 지독한 불화와 경쟁이 빚어낸 '창조적 긴장감'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서로를 밀어내고 증오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서로가 있었기에 자신의 걸작을 완성할 수 있었던 두 사람.

우리는 로마를 거닐며 한 시대의 예술이 어떻게 질투와 열등감, 자부심과 야망이라는 인간 본연의 감정 속에서 폭발적으로 피어났는지 목격하게 됩니다.

로마에 가신다면, 피아차 나보나에서 두 걸작을 바라보며 꼭 한마디 '아는 척'을 보태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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