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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숨은 이야기

프랜시스 베이컨 '비명 지르는 교황' 분석: 2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실존주의

by 아트언락커 2025.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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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 니체의 선언이 현실이 된 시대.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폐허 속에서, 한 화가가 가장 성스러운 존재의 얼굴을 빌려 시대의 공포를 절규합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왜 벨라스케스의 완벽한 초상화 속 교황을 부서진 의자에 앉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가두어 비명을 지르게 했을까요? 오늘 '그림 읽어주는 서재'에서는 20세기 가장 문제적 작품, '비명 지르는 교황' 연작을 통해 전쟁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예술가의 붓 끝에서 가장 신성한 상징을 뒤틀어 놓았는지 그 비밀을 파헤쳐 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에 대한 습작>, 1953, 캔버스에 유채, 153 x 118 cm, 디모인 아트센터 (이미지출처:https://www.artchive.com/artwork/study-after-velazquezs-portrait-of-pope-innocent-x-francis-bacon-1953/)

 

미술사에서 이토록 대담한 '반역'이 또 있었을까요? 권위와 신앙의 정점에 있는 교황의 얼굴이 뭉개지고, 그의 입은 고통스러운 비명으로 벌어져 있습니다.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뒤틀린 자세로 의자에 붙들려 있고, 주변은 정체불명의 어둠과 쇠창살 같은 선들로 가득합니다. 바로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대표작,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에 대한 습작>입니다. 이 그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맞습니다. 베이컨은 17세기 스페인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가 그린 완벽한 초상화를 무려 45점 이상 재해석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참하게 '파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답은 그림이 그려진 시대, 바로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0년대에 있습니다.

🎨 원작의 위엄: 벨라스케스의 살아있는 교황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원작을 만나봐야 합니다. 벨라스케스가 1650년에 그린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은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 중 하나로 꼽힙니다. 교황 본인조차 "너무 진짜 같다"라고 평했을 정도니까요. 그림 속 교황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그의 얼굴에는 한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권모술수와 예민함, 그리고 권력자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붉은색 비단옷의 질감, 반짝이는 금실 자수, 교황의 단호한 표정까지, 모든 것이 절대적인 권위와 위엄을 뿜어냅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 1650, 캔버스에 유채, 141 x 119 cm,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이미지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ortrait_of_Innocent_X)

💡 알아두세요!
프랜시스 베이컨은 평생 벨라스케스의 원작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오직 흑백 사진과 도판으로만 이 그림을 접했죠. 어쩌면 원작의 아우라에 짓눌리지 않고, 상상 속에서 이미지를 자유롭게 해체하고 재조립할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사용한 강렬한 보라색 역시, 흑백 사진을 보고 색을 상상하며 칠한 결과물입니다.

💣 폐허 속 절규: 2차 대전이 남긴 트라우마

베이컨이 활동하던 1940-50년대 유럽은 그야말로 '폐허'였습니다. 런던 대공습(The Blitz)의 기억,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참상,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남긴 충격 등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들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성과 합리,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쌓아 올린 서구 문명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런 시대에 신의 대리인인 교황을 그린다는 것은 베이컨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권위, 침묵으로 일관했던 종교, 그리고 고통받는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베이컨은 벨라스케스가 그린 '살아있는' 교황을 20세기의 '고문실'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 침묵의 비명: 교황의 벌어진 입은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1925) 속 비명 지르는 간호사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총알에 맞아 안경이 깨진 채 비명을 지르지만, 무성 영화 속 그녀의 비명은 들리지 않죠. 베이컨의 교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절규하지만, 그 소리는 어둠과 그를 옭아매는 수직의 선들(마치 감옥의 창살처럼)에 갇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입니다. 이는 전쟁의 참상 앞에서 무력했던 종교와 인류의 침묵에 대한 고발처럼 들립니다.
  • 감금된 권력: 교황이 앉은 황금 옥좌는 유리 상자 혹은 케이지(cage) 같은 공간에 갇혀 있습니다. 이 '케이지'는 베이컨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로, 심리적 고립과 실존적 불안을 상징합니다. 전쟁 중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정의 유리 부스 안에 앉아있던 모습과 겹쳐 보인다는 해석도 있죠. 가장 높은 권력의 상징이 가장 무력하게 갇혀버린 역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뭉개진 형상: 고깃덩어리처럼 뭉개지고 뒤틀린 인물 표현은 베이컨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그는 전쟁을 겪으며 인간이 한낱 '고기'처럼 취급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습니다. 그의 붓질은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된 시대의 풍경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 잠깐!
베이컨의 '교황'은 단지 종교 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폭력, 동성애자로서 겪어야 했던 억압 등 개인적인 상처와도 연결됩니다. '교황(Pope)'과 '아버지(Papa)'의 언어적 유사성 속에서, 그는 신과 아버지로 대표되는 모든 종류의 권위와 폭력에 저항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 이 작품,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

프랜시스 베이컨의 '비명 지르는 교황' 연작은 전 세계 여러 미술관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에 대한 습작>(1953)은 미국 아이오와주의 디모인 아트센터(Des Moines Art Center)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디모인 아트센터는 현대 미술 컬렉션으로 유명하며, 베이컨의 작품 외에도 에드워드 호퍼, 조지아 오키프 등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아이오와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20세기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 강렬한 작품을 직접 마주해 보시길 바랍니다.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베이컨은 왜 하필 '교황'을 그렸나요?
A1: 베이컨에게 교황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극적인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나는 교황들에게 아무런 반감이 없지만, 단지 그 색채를 사용할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권위에 대한 저항, 인간 실존에 대한 탐구를 볼 때, 교황이라는 소재는 그의 철학을 표현하기에 가장 완벽한 캔버스였을 것입니다.

 

Q2: 그림이 너무 기괴하고 불편한데, 이것도 '아름다운' 예술인가요?
A2: 베이컨의 예술은 전통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는 "현실의 잔혹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 믿었습니다. 그의 그림이 주는 불편함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삶의 진실, 즉 고통, 불안, 죽음의 공포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불편한 진실'을 통해 감정의 정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베이컨 식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재지기의 시선]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종종 아름다움보다는 고통을, 평온함보다는 불안을 먼저 느낍니다. 그의 '비명 지르는 교황'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폭력이 한 개인의 정신을, 나아가 한 시대 전체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증언입니다. 벨라스케스의 교황이 신과 인간 사이의 '권위'를 상징했다면, 베이컨의 교황은 그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 남은 인간의 '실존'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베이컨은 비명을 지르는 교황의 얼굴을 통해 이렇게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끔찍한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고 말이죠. 그 답은 결국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다음에도 더 깊고 재미있는 그림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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