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사에서 이토록 대담한 '반역'이 또 있었을까요? 권위와 신앙의 정점에 있는 교황의 얼굴이 뭉개지고, 그의 입은 고통스러운 비명으로 벌어져 있습니다.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뒤틀린 자세로 의자에 붙들려 있고, 주변은 정체불명의 어둠과 쇠창살 같은 선들로 가득합니다. 바로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대표작,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에 대한 습작>입니다. 이 그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맞습니다. 베이컨은 17세기 스페인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가 그린 완벽한 초상화를 무려 45점 이상 재해석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참하게 '파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답은 그림이 그려진 시대, 바로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0년대에 있습니다.
🎨 원작의 위엄: 벨라스케스의 살아있는 교황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원작을 만나봐야 합니다. 벨라스케스가 1650년에 그린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은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 중 하나로 꼽힙니다. 교황 본인조차 "너무 진짜 같다"라고 평했을 정도니까요. 그림 속 교황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그의 얼굴에는 한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권모술수와 예민함, 그리고 권력자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붉은색 비단옷의 질감, 반짝이는 금실 자수, 교황의 단호한 표정까지, 모든 것이 절대적인 권위와 위엄을 뿜어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평생 벨라스케스의 원작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오직 흑백 사진과 도판으로만 이 그림을 접했죠. 어쩌면 원작의 아우라에 짓눌리지 않고, 상상 속에서 이미지를 자유롭게 해체하고 재조립할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사용한 강렬한 보라색 역시, 흑백 사진을 보고 색을 상상하며 칠한 결과물입니다.
💣 폐허 속 절규: 2차 대전이 남긴 트라우마
베이컨이 활동하던 1940-50년대 유럽은 그야말로 '폐허'였습니다. 런던 대공습(The Blitz)의 기억,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참상,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남긴 충격 등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들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성과 합리,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쌓아 올린 서구 문명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런 시대에 신의 대리인인 교황을 그린다는 것은 베이컨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권위, 침묵으로 일관했던 종교, 그리고 고통받는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베이컨은 벨라스케스가 그린 '살아있는' 교황을 20세기의 '고문실'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 침묵의 비명: 교황의 벌어진 입은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1925) 속 비명 지르는 간호사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총알에 맞아 안경이 깨진 채 비명을 지르지만, 무성 영화 속 그녀의 비명은 들리지 않죠. 베이컨의 교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절규하지만, 그 소리는 어둠과 그를 옭아매는 수직의 선들(마치 감옥의 창살처럼)에 갇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입니다. 이는 전쟁의 참상 앞에서 무력했던 종교와 인류의 침묵에 대한 고발처럼 들립니다.
- 감금된 권력: 교황이 앉은 황금 옥좌는 유리 상자 혹은 케이지(cage) 같은 공간에 갇혀 있습니다. 이 '케이지'는 베이컨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로, 심리적 고립과 실존적 불안을 상징합니다. 전쟁 중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정의 유리 부스 안에 앉아있던 모습과 겹쳐 보인다는 해석도 있죠. 가장 높은 권력의 상징이 가장 무력하게 갇혀버린 역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뭉개진 형상: 고깃덩어리처럼 뭉개지고 뒤틀린 인물 표현은 베이컨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그는 전쟁을 겪으며 인간이 한낱 '고기'처럼 취급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습니다. 그의 붓질은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된 시대의 풍경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베이컨의 '교황'은 단지 종교 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폭력, 동성애자로서 겪어야 했던 억압 등 개인적인 상처와도 연결됩니다. '교황(Pope)'과 '아버지(Papa)'의 언어적 유사성 속에서, 그는 신과 아버지로 대표되는 모든 종류의 권위와 폭력에 저항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 이 작품,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
프랜시스 베이컨의 '비명 지르는 교황' 연작은 전 세계 여러 미술관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에 대한 습작>(1953)은 미국 아이오와주의 디모인 아트센터(Des Moines Art Center)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디모인 아트센터는 현대 미술 컬렉션으로 유명하며, 베이컨의 작품 외에도 에드워드 호퍼, 조지아 오키프 등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아이오와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20세기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 강렬한 작품을 직접 마주해 보시길 바랍니다.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베이컨은 왜 하필 '교황'을 그렸나요?
A1: 베이컨에게 교황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극적인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나는 교황들에게 아무런 반감이 없지만, 단지 그 색채를 사용할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권위에 대한 저항, 인간 실존에 대한 탐구를 볼 때, 교황이라는 소재는 그의 철학을 표현하기에 가장 완벽한 캔버스였을 것입니다.
Q2: 그림이 너무 기괴하고 불편한데, 이것도 '아름다운' 예술인가요?
A2: 베이컨의 예술은 전통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는 "현실의 잔혹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 믿었습니다. 그의 그림이 주는 불편함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삶의 진실, 즉 고통, 불안, 죽음의 공포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불편한 진실'을 통해 감정의 정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베이컨 식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재지기의 시선]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종종 아름다움보다는 고통을, 평온함보다는 불안을 먼저 느낍니다. 그의 '비명 지르는 교황'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폭력이 한 개인의 정신을, 나아가 한 시대 전체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증언입니다. 벨라스케스의 교황이 신과 인간 사이의 '권위'를 상징했다면, 베이컨의 교황은 그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 남은 인간의 '실존'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베이컨은 비명을 지르는 교황의 얼굴을 통해 이렇게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끔찍한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고 말이죠. 그 답은 결국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다음에도 더 깊고 재미있는 그림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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